일본의 인기 아이돌 그룹 아라시는 올해 미국시장 진출을 시행했다.
2020년말을 기점으로 그룹연예활동을 아예 중단한다고 결정한 그룹치고는 다소 무리한 진출이 아닌가 싶지만
그 맥락을 보면 오히려 철저히 의도된 고려도 다분히 보이는 행보이다.
아라시는 일본의 2020년 도쿄올림픽 NHK홍보대사로 선정되었다.
원래 아라시는 종전부터 올림픽 및 월드컵의 주제가를 담당해왔기 때문에 도쿄올림픽 홍보대사 선정 자체는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자국 올림픽 개최에 맞추어 일본의 대중문화를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하에 해외에 진출한다는 프로젝트 자체도 이해할만한 결정이다.
단 이와 같은 의사결정은 해외에서의 시장성보다는 철저히 일본 내부적 사정이 반영된 결과이다.
아라시는 일본에서 가장 선호도와 영향력이 높은 예능인으로 인정받고 있으므로 (구체적으로 보면 선배 그룹 SMAP과의 우위 판단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일단 여기서는 넘어간다. SMAP은 이미 나이가 장년에 접어들었고, 아라시는 닛케이 랭킹에서는 2010년을 전후로 계속적으로 이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을 대표할만한 대중문화인으로서 적절하다는 것이다.
아라시가 위 해외진출 프로젝트를 거부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를 수용한 것은 일본 대표 아이돌이라는 상징성, 도쿄올림픽개최와 맞물려 예능 외적 분야, 즉 일본정부나 올림픽위원회의 협조 요청도 있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하지만 이는 다시 말하면 아라시의 해외 진출 특히 미국 대중음악시장 진출은 해외에서의 시장성이 고려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아시아 (우리나라도 포함) 및 서구권 일본문화팬층에서 아라시는 인지도와 인기가 상당한 편이다.
하지만 위 인지도 내지 인기란 일본문화에 관심이 있는 해외팬층에 한정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위 한정적 팬층의 지지도를 근거로 해외대중문화의 시장성을 높게 판단함은 오류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아라시의 해외진출은 해외시장에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목표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 맞추어 공영방송 올림픽 홍보대사이자 일본 대표 연예인으로서 일본과 올림픽을 홍보한다는 정책적 고려가 큰 것이다.
문제는 위 '홍보'의 방향성에 최근 대두되는 K-pop에 대한 의식이 강하게 엿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K-pop의 정의는 한국 아이돌 가수로 한정한다. 현재 해외에서 인기있는 가수들의 대부분은 미성년자 또는 최대 20대 중반 댄스 등 퍼포먼스형 가수들이므로)
한국 대중가수들의 해외인기는 이미 새로울 것이 없는 현상이 되었다. 최근에는 일부 아티스트들이 미국의 유력 대중가요 시상식에서 수상하거나, 프라임타임 유명방송에 출연하거나, 빌보드차트인 또는 1위를 차지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인터넷시대에 이러한 소식이 일본에도 전해지지 않을리가 없다. 일단 일본 내부에서도 K-pop이 특별한 해외 대중음악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접하기 쉬운 정도로 인지도와 영향력이 강화되었다. 예를 들어 일본 고등학교 축제에서 한국 가요에 맞추어 댄스경연을 하거나 일본 야구선수들의 등장 곡 중 한국 가수들의 곡을 쓰는 선수들을 어렵지않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따라서 최소한 일부 K-pop의 경우 해외차트나 방송을 통해 눈에 띌만한 성과를 기록한 것이다.
일본 최고의 예능인으로서 해외에 진출하게 된 아라시로서는 당연히 의식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또한 일본인의 관점에서 위 '의식'이란 단순히 K-pop의 성과에 대한 인식만이 아니라 좀 더 복잡하다.
조금 과장을 보태어 비유하자면 K-pop은 "오리지널을 베끼거나 훔쳐서 해외에서 오리지널보다 성공을 거둔 부자"이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일본 대중문화계가 보는 한국은 철저히 일본 아래 국가이다.
특히 아이돌 분야의 경우 아티스트 양성, 기획, 홍보까지 일본을 그대로 카피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 인식이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K-pop 아이돌 기획이 아라시가 소속된 일본 아이돌 기획사인 쟈니스 사무소와 유사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외모가 출중하거나 댄스나 가창력, 예능 역량을 갖춘 미성년자들을 선발하여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멤버들을 조합하며 그룹의 아이덴티티를 기획하여 데뷔시키는 것은 쟈니스 사무소가 이미 60년대부터 갖추어 온 시스템이다.
따라서 일본 연예계가 본 본 한국 K-pop은 자신들의 시스템을 그대로 베껴서 해외에 진출한 아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일본연예계에서 K-pop은 여전히 열위이며, 그 성공을 진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 버라이어티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아라시 멤버의 발언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당신들이 보고 있는 비일본인들로 구성된 (아시아) 그룹들은 모두 쟈니(아라시 소속사 쟈니스 사무소의 창업자)가 1960년대에 했던 토대적 작업들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쟈니가 수십 년 전 토대를 만들어놓았던 건축물이 이제야 드디어 세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비록 쟈니가 한 것이 아니어도, 그 유산은 여전히 살아 계속되고 있으며 건재하다. 당신은 다른 문화와 나라들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꽃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최근 인터뷰 내용이다. 20세기 초반 식민지 시대에 나온 발언이 아니라는 점이 놀랍다.
위 발언의 논리적 오류를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다.
간단히 요약하면 오리지널리티 인식의 오해와 과도한 인과관계 확장의 오류가 섞여있다.
1. 우선 아라시의 소속사인 쟈니스사무소의 태동 자체가 미국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모방한 것이다.
쟈니스사무소의 창업자인 쟈니 키타가와 스스로가 미국 헐리우드 시스템을 동경하여 일본에 같은 연예기획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점은 이미 여러번 밝힌 바 있다. 일단 창업주의 이름부터가 영미식 '쟈니'아닌가.
쟈니스사무소의 시스템, 즉 전국 각지에서 미소년들을 캐스팅하고, TV방송의 사무소 전속 프로그램을 통하여 노출시키는 전략은 미국 미키마우스클럽과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아라시 멤버의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면 한국 K-pop 시스템의 근원은 일본이 아니라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다.
이는 논증오류의 반박 측면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
현대 상업 대중문화의 시스템 개요는 미국이 근간임을 부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개별 문화권의 고유한 특성이 있지만 대중문화의 상업화를 위한 기획, 캐스팅 및 홍보시스템의 전체적인 개요는 미국에서 기원하고 있다. 대중문화산업도 비즈니스이고 현대 비즈니스의 중심이 미국에 있으므로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또한 쟈니스 사무소나 일본이 없었더라도 미국의 원조 대중문화 기획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한국은 미국의 시스템을 받아들여 언제라도 K-pop을 창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쟈니스 사무소는 K-pop 태동의 결정적 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2. 일본 아이돌 시스템이 미국의 그것과 전혀 별개의 고유 시스템이고 K-pop 이를 모방하였다고 가정하더라도 현재 21세기 K-pop이 여전히 일본 아이돌 시스템의 복제물이라는 논리는 인과관계가 과도하게 확장된 논증오류이다.
아라시 멤버가 언급한 것처럼 쟈니스사무소가 아이돌 기획 시스템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이다. 이후 반세기 이상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K-pop은 일본 아이돌 시스템의 유산이라는 논리는 인과관계가 지나치게 확장된 논증오류이다.
많이 양보해서 한국 대중문화의 쟈니스 사무소 유산론이 그나마 적용 가능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판단하자면 그 지점은 딱 90년대 초반까지라고 본다.
예를 들어 80년대 소방차의 경우 멤버구성이나 안무, 노래 등이 쟈니스 사무소의 소년대와 매우 유사했다.
90년대 초반까지 활동한 일부 댄스음악 기반 그룹들 중 일본 대중문화의 요소가 상당히 반영된 경우가 있었지만 이 경우 모방의 대상은 쟈니스 사무소가 아니었다. 또한 90년대 초반 한국의 댄스음악은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의 데뷔와 스타 프로듀서들의 대두로 일본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색채를 보이게 된다.
일본 쟈니스사무소와 한국 K-pop의 관계는 마치 전자 및 반도체 산업의 변화추이를 연상시킨다. 90년대 중후반까지 일본 유수 전자업체들의 첨단제품, 예를 들어 텔레비전, 비디오, 휴대용 카세트/CD플레이어를 모방하던 한국 기업들이 밀레니엄을 전후하여 기술혁신으로 일본을 추월하기 시작하고, 2020년 현재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첨단분야에서는 오히려 한국의 우위가 두드러지는 현상은 K-pop의 변화와 유사하다. 원래 대중문화도 일종의 산업이고, 타 산업분야의 발전과 완전히 동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러한 유사성은 당연한 것이다. 현 상황에서 K-pop이 쟈니스사무소의 유산이라는 주장은 한국의 삼성, LG, SK등은 소니, 마스시타, 도시바의 유산이라는 발언과 동일한 성질이다. 일본인 중에서는 정말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듯하지만, 실제 이 발언을 공개적으로 내뱉는다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쟈니스 사무소 소속 멤버에게 K-pop의 성과는 일본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유산으로 해석되고 있다. 한국의 발전에 관한 기승전 일본의 식민지근대화론과 매우 유사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위 쟈니스 소속 멤버의 논리오류는 위 특정 멤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본 국민의 전반적인 인식이라는 합리적 추측이 가능하다. 식민지배의 부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의 국민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전형적인 논리 오류적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K-pop이 일본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서 기원했다는 논리 오류에 빠진 일본인의 반응은 1. 혐한 또는 2. K-pop의 자국편입 시도이다.
위 버라이어티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라시 멤버는 "K-pop의 인기에 나쁜 감정이 없다"고 발언했지만 이 발언이야말로 그가 얼마나 K-pop이 호감이 아닌지를 방증하고 있다. 나쁜 감정이 없다면 굳이 "나쁜 감정이 없음"을 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K-pop은 쟈니스 사무소를 베껴 성공한 것이므로 나쁜 감정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관대하므로 나쁜 감정이 없다. 하지만 좋은 감정도 아니다'라는 말을 생략한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러한 의식이 비단 위 특정 멤버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일본에서 혐한 관련 도서가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는 점을 보아도 그렇다.
나아가 (일부)일본인들은 K-pop의 성과를 일본인의 성과와 동일시하기까지 한다. K-pop유튜브 댓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논리이다.
식민지시대 올림픽에서 한국인의 금메달을 일본의 성과로 자랑했던 기시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심지어 쟈니스 사무소는 자사 신인 그룹 유튜브 동영상의 숨겨진 해쉬태그에 아무 관련이 없는 K-pop 그룹들을 추가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일본에서 K-pop의 성과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위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상황에서 아라시의 해외진출은 K-pop의 성과 폄하 또는 K-pop의 오리지널리티가 일본 아이돌시스템에 있다는 홍보가 오히려 주요 활동이 될 수 있다.
비약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완전히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그 근거는 앞서 기재한 바와 같이 아라시의 해외진출은 목적 자체가 도쿄올림픽과 맞물려 일본과 일본문화를 홍보한다는 점에 있다.
상업적 성공만이 목표가 아니라 일본문화와 일본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다면 성공적인 활동인 것이다.
(일본인의 관점에서) 일본을 카피한 K-pop의 실체를 알리고 그 오리지널리티가 일본 아이돌 시스템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위 취지에 부합하는 활동이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근거는 아라시가 실제로 해외진출에서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애초에 대중문화에서 해외'진출'이라는 용어는 부적절하다.
문화는 제품이나 서비스처럼 일방적으로 제조하거나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유명 가수들이 대중문화 최대시장인 미국에 진출하고자 하였으나 그와 같은 방식은 상업적인 성공으로 연결되지 못하였다.
특히 정보접근성이 높아진 현재에는 해외시장성이 있는 가수들은 해외에서 활동하지 않더라도 이미 소비자가 그 가수의 컨텐츠에 접근하고, SNS로 이를 확산시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해외시장에서 성과를 거둔 K-pop아티스트 또는 가수 싸이의 경우도 그러했다.
다시 말해 아라시와 같은 연차가 20년 이상인 가수의 경우, 그들의 컨텐츠가 해외시장성이 있다면 이미 상당히 해외인들에게 전파되어 있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은 주지하다시피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2020년 연말을 향해가는 시점에서 해외에서 아라시의 상업적 성과는 역시나 특출나다고 보기 어렵다.
대중가수의 최대 미덕은 상업성임에도 불구하고 이 상업적 성과가 미비할 것이 명약관화한 상황. 그러나 해외진출은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다른 방면으로라도 성과가 있어야 할 것이다.
"K-pop 일본 기원론"전파는 이러한 측면에서 그들에게 의미있는 '성과'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성과가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어디일까.
인터뷰장소인 미국? 아라시는 이것을 원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이 한국보다 우위라는 인식은 서구에서도 일반적이지만 기승전 일본기원론은 미국에서도 그다지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최근 K-pop뿐만 아니라 코로나 방역, 경제 등의 측면에서 한국의 위상이 제고되고 있는 측면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또한 위 인용 버라이어티 인터뷰어는 아라시의 소속사 창업자인 쟈니 키타가와의 미성년 성적학대를 언급했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즉 일본이 그토록 강조하는 아이돌 양성 시스템은 서구권에서 아동학대의 비판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아시아에 대한 서구의 왜곡된 시각에 관해서는 여기서 판단하지 않겠다). 즉 일본이 K-pop 일본 기원론을 주장할수록 서구권에서 일본은 아동학대를 전 아시아에 전파하고서 아이돌 문화의 상업성을 자랑하는 국가로밖에 인식되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한국의 아이돌 시스템이 일본을 모방한 점은 있을지라도 소속사 내에서 성적학대가 문제된 적은 없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은 아라시 멤버가 주장한 쟈니의 유산을 물려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국인이 저 일본기원론을 수용할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하나의 선택지가 남는다. 바로 자국 일본이다.
요즘 인기있는 K-pop도 일본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주고 자국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것.
아라시의 해외진출 성과는 곧 북핵문제, 납치문제와 같이 일본 내부의 결속력을 다지는 정도에 불과하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를 염두해두고 해외에 진출한 것일 수도 있겠다. 상업적 성공은 누가봐도 어려운 것이었으므로